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점차 우리의 존재 자체에 흐뭇해하는 마음이 시들해지고 우리가 뭔가를 잘해야 열광해 준다. 이제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우리가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갖는 셈이다. 예전의 선생님들은 뭘 그린 건지 알아보기도 힘든 무당벌레 그림이나, 아무렇게나 휘갈겨놓은 만국기 그림을 보고도 아주 잘 했다고 칭찬해줬지만, 이제는 시험성적이 잘 나와야만 칭찬해준다.
그뿐인가? 주위 사람들에게 모진 조언도 듣게 된다. 물론 그 사람들 딴에는 우리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겠지만, 스스로 돈을 벌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며, 우리가 경제적인 자립을 얼마나 잘해내느냐에 따라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입 밖으로 꺼내는 말과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도 신경 써야 한다. 우리의 겉모습 중에 남들에게 반감을 사거나 겁을 먹게 만드는 부분이 있따면 감춰야 하고, 옷과 헤어스타일에 돈을 써가며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부족하고 어설픈 존재, 부끄러움과 불안감을 가득 담고 있는 존재로 성장해간다. 어른이 되면서 천국에서 완전히 추방당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자아는 태어날 때 함께 가지고 나온 원초적인 욕구를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뭔가를 잘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몸을 매개로 사랑 받고 싶은 욕구,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고 싶은 욕구, 자신의 살 냄새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욕구다. 이 모든 선천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로 인해 이상주의적 열망에 사로잡혀 키스하고 싶고 같이 자고 싶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게 되는 것이다.(36-38p)
내가 존재한다는 이유가 아닌, 나의 존재를 인정 받기 위한 이유를 끊임없이 요구 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괜찮아"라고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누구에게든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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